아무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포털에 접속하면 누군가 결혼한다는 기사가 검색어 사위를 차지하는 것이 요즘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유명인사들과 연예인들이 그 대상인데 이젠 좀 지루하다.  뭐 그렇게 남의 인생 대소사에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어 봐야하는지…  그래서인가?  뜬금없이 매체에서 열을 올리는 웨딩드레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다.  누가 누구와 결혼한다는 정보가 온갖 타블로이드를 장식하게 되면, 그 다음은 신부는 어느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었다라는 칼럼이 바톤을 이어받게 되고, 나는 지루한 것과 관계없이 너풀거리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쳐다보고 있으니 말이지.  웨딩드레스는 예쁘니까 그리고 멋지니까. ㅎㅎ   더욱이 웨딩드레스 때문에 패션유학을 생각하게 된 분들도 간혹있으시기도 하고.  어떤 셀리브리티의 웨딩드레스부터 이야기를 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내키는대로 늘어놓기로 했다.  헐리우드의 셀리브리티들 부터 왕실의 웨딩 드레스까지.  어떤 카테고리로 나눠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니까 습기찬 장마탓에 머리가 딱 정지해 버렸다.  나는 이렇게 또 더위를 먹어가나보다. ㅜ.ㅜ  Anyway!

내 머릿속에 처음 생각난 웨딩드레스는 사라 제시카 파커의 블랙 웨딩드레스다.  뉴욕 된장녀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섹스앤더시티의 그 캐리는 진짜 결혼식에서 블랙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매튜 브로데릭과 사라 제시카 파커는 그들의 결혼사진이 타블로이드에 도배되는걸 막으려고 블랙 웨딩드레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 당시는 파커보다 브로데릭이 더 유명하고 잘나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현재는 파커가 브로데릭보다 더 유명하고 돈도 잘버는것 같지만,  브로데릭네 집안이 워낙에 잘 살아서 파커가 아무리 수익을 내더라도 남편을 능가하기는 힘들단다.  파커가 유명해지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 제시카 파커는 후회를 했단다.  왜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에 블랙 웨딩드레스를 입었을까 하고.  아마 파커가 패셔니스타의 대열에 들어서면서 드레스코드를 제대로 읽은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섹스앤더시티 영화판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아방가르드한 웨딩드레스도 입었고,  입생로랑이 디자인해준 비앙카 재거(믹 재거 첫번째 부인)의 단아하고 섹시한 웨딩수트도 모사해 입었으니  블랙 웨딩드레스에 대한 후회를 조금은 거두지 않았을까.

두 번째 후보는 우리에게 상큼하고 유쾌한 결혼식을 선사한 케이트 모스다.  조니 뎁과 위노나 라이더가 헤어진 후 케이트 모스와 죽고 못살던 시절이 좀 거짓말 보태서 엊그게 같다.  조니 뎁과 헤어진 케이트 모스는 요양원도 다녀와야 할정도로 정말 힘들어했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고 조니 뎁 이후에도 케이트 모스의 남성편력은 대단했다.  조니 뎁 이후로 재퍼슨 핵과 사귀면서 딸 릴라를 낳았고, 그녀 인생 최악의 남자인 피트 도허티와도 사귀었다.  피트 도허티는 케이트 모스에게 코카인을 가르쳐 하마터면 코스가 모델계에서 축출당할뻔도 했다.  현재는 더 킬스의 기타 리스트 제이미 힌스와 결혼해 한 남자에 정착했다.  케이트 모스는 나쁜 남자를 좋아하기도로 유명한데 조니 뎁부터 제이미 힌스까지 사귄 남자를 죄다 평범한 착한가이는 없다.  이렇게 남성편력은 가득해도 결혼은 첫번째다.  케이트 모스는 패션디자이너들의 러브콜을 제치고 자신이 직접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했다.  패션감각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엣지를 같고 있으니 이런 자신감도 충만한거다.  패션분야의 여러 디자이너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웨딩드레스는 그녀의 콧대높은 자신만큼 상큼하고 유쾌해서 얄미울 정도였다.  케이트 모스는 자신의 슬림한 몸매를 돋보이도록 슬립형 엠파이어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남편 제이미 힌스는 블루그레이 투버튼 블레이저도 상큼하고, 딸 릴라의 화동 드레스도 이들과 너무 잘 어울린다.  누가 케이트 모스 당신 아니랄까봐 참 시크하고 러블리하게 결혼식을 성사시켰군요!  첨언 하자면 제이미 힌스와는 현재 이혼했다.  케이트 모스의 남성편력이 또 시작될 듯 하다.

세번째는 결혼도 진짜 많이했고, 남자도 정말 많았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다.  결혼은 8번, 전남편은 7명이다.   같은 남자와 두 번 결혼, 7번 이혼, 한 번의 사별.   그녀의 넘치는 열정과 전설적인 미모 때문이겠지만 결혼을 참 많이했다.  그 수많은 결혼중에 제일 뇌리에 남는 웨딩드레스는 첫번째 결혼이었던 콘래드 니키 힐튼과 했을 때였고, 리차드 버튼과 했던 두 번의 결혼 중에 첫번째 결혼식에서다.   참고로 리차드 버튼과 두 번을 결혼했고, 리즈 테일러에게는 5,6번째 결혼이었다.  첫번째 남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힐튼네 집안의 아들이다.  파리스 힐튼의 그 힐튼.  콘래드 힐튼은 부잣집 망나니 아들로 주체못하는 바람기와 알콜 중독으로 47세 젋은 나이에 사망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첫남편과 계속 결혼생활을 지속했다면,  파리스 힐튼은 그 요란법석을 안떨고도 헐리우드 동네에 발을 들였을지도 모르겠다.   5,6번째 남편이었던 리차드 버튼과는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만났다.  리즈 테일러가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리차드 버튼이다.  자기가 죽고난 뒤에는 버튼의 고향에 유해가 뿌려졌으면 한다고 말할정도로 사랑했다.  그러나 리즈 테일러의 인생을 따라가다보면 결혼과 이혼을 밥먹듯이 했구나하는 여자가 아니라  마이클 잭슨과 절친이었고 에이즈로 죽은 친구 록 허드슨을 위해 에이즈 퇴치 운동에 나섰던의리있는 멋진여자로 보인다.   콘래드 힐튼과 결혼할 때 입었던 웨딩 드레스의 가격이 1,500불이었다고 한다.  1950년에 일반인들의 1년 평균 연봉이 2,570불이었으니 드레스 값이 어마하다.  첫 결혼식의 웨딩드레스는 헐리우드의 코스튬 디자이너였던 헬렌 로즈가 맡았다.  리즈 테일러는 주얼리 수집으로도 유명하다.  언젠가 한 번 리즈 테일러의 주얼리 만으로 글을 쓸 예정이다.

네번째는 슬퍼서 아름다웠던 모나코 왕비 샤를린 위트스톡이다.  예쁜여자 좋아하는걸로는 모나코 왕가 남자들의 집안 내력인듯하다.  모나코 전 왕이었던 레니에 3세는 헐리우드 톱여배우였던 그레이스 캘리와 결혼했고, 아들 알베르 2세는 남아공출신의 아름다운 수영선수였던 샤를린 위트스톡과 결혼했다.   유럽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나라를 전세계에 알리게 된 계기는 알베르 2세의 아버지 레니에3세가 그레이스 캘리와 결혼하면서 부터다.  그레이스 캘리의 명성을 이용해 국가이미지 제고에 나섰던 레니에 3세는 전략적으로는 성공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는 못했다.  헐리우드에서도 유명했던 바람둥이 그레이스 캘리는 결혼후에도 여전히 바람을 피웠고, 레니에 3세는 마누라를 이용해 국가 홍보에만 열을 올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알베르 2세 여동생 스테파니 공주도 엄마를 닮아 남자문제로 끊임없이 사고를 치고 있고, 알베르 2세는 사생아까지 두고 있으니 말이 좋아 왕실이지 참 골아픈 집안이다.   남편이 될 사람이 사생아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모나코를 수차례 탈출하려던 샤를린 위트스톡은 결국 결혼식을 올렸다. 샤를린이 왕비가되던 날 결혼식에서 참 슬프게 울었다.  환하고 가장 빛나야 할 결혼식의 신부가 어떻게 사진 하나하나마다 구슬퍼 보이는지 가슴이 아리다.  샤를린 위트스톡의 웨딩드레스는 이탈리아 패션디자이너 조지오 아르마니가 디자인했다.   구슬펐던 왕세자비는 현재 쌍둥이들을 낳고 잘 사는 것 처럼 보인다.  알베르 2세가 딱히 사고만 안치면 좋겠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세기적이면서 비운했던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레이디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다.  미국에는 귀족가문이 없다보니 재클린은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이 귀족으로 여기는 사람중에 하나다.  재클린이 등장하기전까지는 사교계 여자들의 룩은 두꺼운 모피에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를 끼는 것이 정설이었다.  유럽 귀족가문에서 보기에는 미국 사교계의 마나님들은 참으로 졸부스러운 스타일을 구사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TV매체가 정치에서 중요하던 시절이 아니었을 때에는 미국의 퍼스트 레이들도 하나같이 검소하고 촌스러운 룩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재클린이 퍼스트 레이디로 등장하면서 그녀는 새로운 퍼스트 레이디 스타일을 제공한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  물론 그만큼 국민세금을 펑펑 쓰기는 했다.퍼스트 레이디의 스타일이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은 재클린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마치 오페라가수의 기준이 마리아 칼라스를 기준으로 나눠지는것처럼 말이다. (재미난건 재클린과 마리아 칼라스는 오나시스를 매개로 관련있는 인물이다.)  재클린은 아일랜드계인데 부비에라는 성도 그렇거니와 대학시절 프랑스에서 공부했던 경험이 있어서 미국인들이 가진 유럽귀족에 대한 환상이나 동경을 적절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스타일 좋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내조 잘하는 젊은 퍼스트 레이디를 미국은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사랑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냉전시대에 소련과의 냉냉한 관계도 재클린이 후르시초프를 만나면서 부드러워졌고, 세련된 매너와 스타일로 드골과 네루의 마음도 사로 잡았다.  멋지고 세련된 스타일과 매너를 가진 퍼스트 레이디의 위력이 정치외교에서도 활약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점을 존 에프 케네디는 적극 외교에 활용해 미국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힘을쓰기도 했다.  재클린 케네디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이야기를 써내도 모자랄만큼 무궁무진한 에피소드가 있다.   재클린의 라이프 스타일, 케네디의 암살, 오나시스와으 재혼, 아들의 죽음 등 삶 전체가 드라마다.  존 에프 케네디와의 결혼식에서 입은 웨딩드레스는 재클린을 지적이고 우아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유럽왕실의 결혼식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하나하나 시접과 주름을 넣어 쿠튀르라는 것을 강조했다.  재클린 첫 결혼식의 드레스는 앤 로에가 디자인했고, 앤 로에는 당시에 쿠티리에로 유명한 디자이너였다.

언젠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이들을 한 명씩 따로 이야기 할 기회가 올 것이다.  이들 모두 패션의 아이콘들이기 때문에 한 명씩 다루어도 충분한 이야깃 거리가 될 듯하다.  이들의 결혼 생활이 모두 행복하거나 행복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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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갈리아노가 고대이집트를 재현한 크리스찬 디올의 오트 쿠튀르. 솔직한 이때부터 그가 위험해 보였다.

존 갈리아노가 천재인건 맞다. 하지만 한동안 고대 이집트나 바로크 시대를 그대로 Ctrl C+Ctrl V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의심을 했었다. 갈리아노의 쿠튀르는 장시간  너무 사치스럽고 오색창연하다 못해 찬란하기까지해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다. 내심 갈리아노와 디올 하우스가 이별을 할 것이라는 쪽에 한 표를 걸고 있었다. 단지 아쉽지만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착한 코스프레를 하거나 아니면 타블로이드에 시끄럽게 잡음을 내며 갈라서는게 관건일 뿐이라는 것이지.  그러나 참 엉뚱하게도 갈리아노는 유태인 차별발언으로 단칼에 디올 하우스와 이별당했다. 속사정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잠시 작곡가 바그너와 동일시 했던거 아닌가 싶다. 크리스찬 디올과 갈리아노가 다투지는 않았지만 전세계 타블로이드를 요란하게 하면 갈리아노가 하차한 것이니 내 몹쓸 촉이 쓸만할 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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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 시몬스의 첫 크리스찬 디올 런웨이. 칸 영화제에서 니콜 키드먼이 입은 드레스 중에 가장 예뻤던 것도 디올의 쿠튀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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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 시몬스의 마지막 질 센더 런웨이. 질 센더를 떠나면서 라프 시몬스는 눈물을 펑펑 흘렸고, 나는 마지막 런웨이가 너무 완벽해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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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 디올의 세련된 뉴룩(New Look). 샤넬만 코르셋에서 여자들을 해방시킨건 아니었다.

갈리아노는 디올에서 퇴장했고 갈리아노 이후의 바통을 누가 넘겨 받을지 정말 궁금했었다. 디올 하우스는 갈리아노의 그림자를 지워내려고 파격적인 인사를 데려오려고 노력하겠지만 과연 그 바통을 내가 넘겨받겠다며 덥석 손을 내밀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말이다. 그러나 그 가시방석 같은 바통을 심드렁하게 받아든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라프 시몬스다. 라프 시몬스는 절제되고 세련된 미니멀한 컬러와 디자인을 영악하게 이용할 줄 아는 패션디자이너다. 그리고 질 센더를 질 센더보다 더 질 센더 답게 이끌어오던 그다. 디올 하우스와 라프 시몬스의 첫 시작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라프 시몬스는 디올 하우스에서의 첫 쿠튀르를 2013년 버전의 러블리 뉴룩으로 재현했다. 다시 말해, 무슈 디올이 1946년에 처음 선보인 뉴룩을 2013년 버전으로 재해석한 것. 라프 시몬의 옷을 보고 좀더 싶다면 인터넷 서치를 부탁한다. 이번 크리스찬 디올의 쿠튀르 런웨이에서는 벽 전체를 모두 생화 꽃장식으로 배경처리를 해놓고 절제된 컬러와 미니멀한 디자인에 크리스찬 디올의 화려함을 담담하게 녹여냈다. 디올 하우스는 갈리아노의 후광을 지워버렸고, 라프 시몬은 메이저 패션브랜드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분좋게 시작했다.  둘에게 윈윈이고 지켜보는 관객도 흐뭇하다.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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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 에드가 드가, 1879. 디올의 드레스들. <파라솔을 쓴 3명의 여인> 마리 브라크몽,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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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의 꽃 : 모네의 정원에 핀 아이리스>, 끌로드 모네,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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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포트만의 미스 디올 드레스> 크리스찬 디올 화장품 라인의 모델인 유태인 출신의 나탈리 포트만 . 존 갈리아노의 유태인 차별 발언에 포트만은 불같이 화를 냈고, 다시는 갈리아노와 엮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갈리아노는 진짜 왜 그랬을까?

크리스찬 디올은 라프 시몬스와 이 성공을 당분간 계속 공유할 생각인듯하다. 그 첫번째 프로젝트로 인상주의 대표그림들과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 디올 의상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4개월 동안 전시를 한다.   파리의 근대화가 본격화 되면서 꽃을 피운 인상주의. 이 시기는 근대이전의 화려한 우아함과 근대이후의 향수어린 모던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림들이 많은 때이다. 크리스찬 디올이 앞으로 추구할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우리가 인상주의를 바라보는 그 지점과 같지 않을까 한다. 과거의 것을 가지고 가면서도 시시대의 물결을 잘 녹여내는 그 지점. 갈리아노의 하차이후 방향을 잠시 잃었던 디올 하우스에게 라프 시몬스가 복덩이임은 틀림없다. 어쩜 이렇게 디올 하우스가 가고 싶은 길을 얄미우리만큼 잘 꿰뚫어보고 실행해 첫 런웨이를 성공시켰으니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전시는 쇠라, 드가, 모리조, 르느와르 등의 인상주의 작품들과  그 작품들에서 영향을 받은 크리스찬 디올 브랜드의 패션작품들을 매치해 관객에게 선보이는 전시다. 무슈 디올의 50년대 작품부터 라프 시몬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작품만 골라냈다고 하니 볼만한 전시가 될거다. 그런데 표정은 인상주의를 재해석에 보자는 것인데 속마음은 라프 시몬스를 앞으로 패션 쿠튀리에로 널리 알리려는 마음이 큰 것으로 보인다.  디올 하우스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 라프 시몬스가 대견하다.

전시는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그랑빌 디올 뮤지엄에서 5월 4일부터 9월 22일까지 열린다. 그랑빌 디올 뮤지엄은 무슈 디올이 유년 시절을 보낸 집으로 파리로 이주를 한 이후에는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후에 벨 에포크 스타일양식의 무슈 디올의 생가를 개조해 그랑빌 디올 뮤지엄으로 사용하고 있다. 디올 뮤지엄의 정원은 아름다운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고, 여기에 인상주의 작품들과 디올 하우스의 눈부신 드레스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니 기대가 되는 전시다.   인상주의 작품들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림을 대여해 온다고 한다.  9월까지는 오르세에서 주요 인상주의 몇 작품들은 못볼지도 모르겠다.   4월부터 9월까지 노르망디에서 인상주의 축제가 길게 이어지고 있으니 꼭 디올 뮤지엄이 아니더라도 인상주의 작품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여행계획에 노르망디를 넣는것도 좋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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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영화에서 캐리 브래드쇼가 청혼받을 때 그리고 결혼식에 신은 마놀로 블라닉의 블루 새틴 스틸레토.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지미추(Jimmy Choo), 그리고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 세계 3대 슈즈 디자이너들이다. 누구의 슈즈가 제일 좋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단연 마놀로 블라닉이다. 제일 나으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려워도 좋아하는것엔 말할 수 있다. 난 마놀로 블라닉이 좋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크리스찬 루부탱은 빅토리아 베컴이 시도때도없이 신어대서 졸부삘(?)을 지울수가 없고, 지미추의 과한 장식과 컬러를 한 슈즈들은 피로감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마놀로 블라닉에 대한 편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블라닉의 슈즈는 심플해서 심심하거나 장식을 오버해서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디자인은 심플해서 밋밋해지기전에 생생하고 세련된 컬러로 가볍게 잡아주고, 특별해 보이려는 욕심을 절제해과하질 수 있는 장식을 덤덤하게 풀어낸다. 슈즈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잃지 않으면서 옷장 한켠에 모셔놓고 싶은 수집의 욕심을 내게 하는 것이 마놀로 블라닉이다. 특히 라인이 유려한 슬링백은 마놀로 블라닉을 능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캐리 브래드쇼와 마놀로 블라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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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어홀릭인 캐리. 마구 사들이 슈즈들 때문에 집살 돈도 없다며 투덜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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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빅의 사랑도 얻고, 마놀로 블라닉도 손에 넣은 캐리.

패션, 사랑, 섹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명쾌한 플롯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쫄깃하게 만들었던 섹스 앤더 시티(Sex and the City).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을 휩쓸고 간 섹스 앤더 시티에는 그 시대를 풍미했던 패션브랜드 네임은 현대 철학자들의 이름만큼 자주 등장한다.  이 시기는 럭셔리 브랜들의 수익이 시원찮을 때였다.  루이비통, 샤넬, 구찌같은 빅3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은 명품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시기에 불현듯 *칙릿소설 (이 붐을 이루면서 소비는 미덕이라고 소비자들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칙릿의 주자 섹스 앤더 시티 덕분에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베라왕(Very Wang), 에르메스(Hermes),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등은 소비자들 입에 착착붙는 브랜드가 되었다.  그 중에 마놀로 블라닉은 인디애나 존스에서 성배같은 존재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섹스 앤더 시티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 캐리가 강도한테 돈과 귀중품을 털릴 때에도 마놀로 블라닉은 안되다고 목놓아 사정하기도 했고, 잡지사 소품실에 갇힌 골아픈 상황에서도 마놀로 블라닉의 메리제인에 숨이 넘어갈 지경이였다.  “어떡해. 이거 뭔지 아냐고?  이거 마놀로 블라닉 메리제인이야!”라며 과호흡을 쏟아냈다.  작가의 취향이든 패트리샤 필드(섹스앤더 시티의 스타일리스트)의 편애이든 마놀로 블라닉은 섹스앤더 시티 이후 면세점이나 백화점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다. 

* 20-30대 미혼 커리어 우먼들을 타겟으로 하는 소설. 젊은 여성이라는 슬랭 Chick과 문학 Literature를 줄여서 칙릿이라고 한다. 대표소설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쇼퍼홀릭>, <섹스 앤더 시티>가 있다. 이 소설들은 모두 영화나 드라마화 되었다.

아날로그 감성이 디지털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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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놀로 블라닉의 일러스트를 보면 슈즈보다 이 그림을 사고싶다.

 

여기에서 한 가지 마놀로 블라닉이 섹스 앤더 시티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그의 성공이 절대 캐리의 오버액션으로 각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마놀로 블라닉의 성공은 간결하다.  마놀로 블라닉 하나면 대충 걸쳐입고 집을 나와도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데 있다.  그리고 마놀로 블라닉은 마스터의 손끝에서 나온거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마놀로 블라닉의 멋진 일러스트도 한 몫한다.  마놀로 블라닉은 디자인 할 슈즈를 하나하나 손으로 그려낸다.  가끔 마놀로 블라닉의 일러스트는 실제 그의 슈즈보다 더 탐이 날때가 있다.  어쩌면 일러스트는 마놀로 블라닉의 판매전략일지도 모른다.  일러스트를 갖지 못하니 슈즈를 사게되는걸 보면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마놀로 블라닉은 아날로그 감성을 듬뿍 가지고 있는 브랜드 인데, 마트갈 때도 그의 슈즈를 줄창 신고 다니는 셀리브리티들의 파파라치 컷이 인터넷에 나돌면서 마놀로 블라닉이 더욱 유명해 졌다는 사실이다.  아날로그는 디지털을 타고 우리에게 오나보다. 

드디어 특별상을 받은 마놀로 블라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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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출신답게 특유의 유머와 컬러감을 뽐내는 마놀로 블라닉.

 패션필드에서 옷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았던 슈즈가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  마놀로 블라닉이 영국 패션협회(British Fashion Council)에서주는 특별상을 받았다.  이 특별상은 전세계 패션산업을 통틀어 중요한 영향을 준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잘나가는 영국 패션 디자이너들만 줄창 받아온 BFC의 상을 마놀로 블라닉이 받았다.  이 특별상을 받은 패션디자이너들은 스텔라 맥카트니, 비비안 웨스트우드,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등이 있다.  마놀로 블라닉이 패션필드에서 40여년을 몸담아 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을 너무 늦게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슈즈 디자이너가 그것도 마놀로 블라닉이 특별상을 받는다니 너무 신나는 일이다.  마놀로 블라닉의 소박한 소감은 이랬다. 이 상을 받아도 자신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런던 패션위크 준비에 힘을 가할거라고.  뭐 특별상을 준다는데 내가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받을만하다고 돌직구를 날릴 필요도 왜 나를 이제서야 알아보느냐고 얼굴 붉힐 필요가 없긴하다.  자신의 분야에서 열과 성을 다해 인정을 받는다는건 가슴 묵직하게 뿌듯한 일이다.  아프지않고 별탈만 없다면 마놀로 블라닉은 참 행복하겠다.  블라닉님! 특별상 받으신거 축하해요. 짝짝짝!

 

2013 칸 영화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가짜싸이도 등장하고, 총격사건에 보석강탈 사건까지… 헐리우드 자본에 잠식되어가는 칸 영화제를 보고 있으면 가끔 아카데미 시상식의 연장선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한다. 이번 칸 영화제의 개막작은 캐리 멀리건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은 드림웍스의 스티븐 스필버그,  카메라 앞에서 과도한 S라인을 펼쳐 보이는 여배우들은 헐리우드 여배우들이었다. 자본에 잠식되어가는건 자본주의의 습성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관객으로서는 씁쓸함이 밀려온다.

영화제의 알맹이는 뒤로 하고 무엇보다 우리를 잠시나마 즐겁게 해주는건 여배우들의 드레스 향연이 아닐까. 2013년 칸 영화제의 드레스는 화이트가 압권이었다. 다른 어떤 컬러보다도 화이트를 소화한 여배우들은 눈에 띄게 시크하고 그 자체로 빛이났다. 2013년 칸을 대표하는 드레스 코드는 고대 그리스조각에서 볼법한 Wet-Drappery 였다. 거두절미하고 자 그럼 칸 여우들의 화이트 드레스를 보러갈까?

 * Wet-Drappry : 고대 그리스 조각들은 남신들은 누드로 표현이 되었고, 여신들은 물에 젖은 드레스를 입은 형태로 표현되었다.  루브르에 있는 시모트라케의 니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엠브리시오
빅토리아 시크릿의 여신 모델 알렉산드라 엠브리시오. 전형적인 화이트 Wet-Drappry 여신 드레스. 엠브리시오는 주헤어 무다드를 선택했다.

 

마리옹 꼬띠아르
슬림하고 모던한 디올의 리조트 드레스. 마리온 꼬띠아르의 신의 한수다.

 

우마서먼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페디먼트에서나 볼 법한 드레스. 우마 서먼이 선택한 드레스는 베르사체 아틀리에.

 

캐리 멀리건
패션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 캐리 멀리건의 비오네 드레스. 다른 어떤 여배우들보다 빛났다.

 

니콜 키드먼
크리스찬 디올의 인상주의 드레스를 선보이고 있는 니콜 키드먼. 그녀가 이번 칸에서 입은 어떤 드레스보다 잘 어울린다.

 

카린 로이펠트
꼼데 갸르송의 크롭트 화이트 톱과 릭 오웬스의 베이지 스커트를 매치한 카린 로이펠트. 카린 로이펠트는 전설적인 파리보그의 전 편집장이다.

 

로지 헌팅턴
로지 헌팅턴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지는 크리스찬 디올의 깔끔한 미니드레스.

 

소피아 코폴라
루이비통의 블랙 세퀸 드레스를 선택한 소피아 코폴라. 블링 링의 감독으로 칸에 참여했다. 절친 마크 제이콥스의 뮤즈이기도 한 그녀는 이번 영화제에서도 의리를 지켰다. 코폴라는 화이트의 물결에서 유일하게 블랙을 시크하게 소화했다.

 

 

내가 왜 필립 스탁의 쥬시 살리프 레몬즙 짜개에 매료 되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말해주지 않으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군더더기 없이 뽑아놓은 머리와 다리의 날렵함 이었을까?  생뚱한 레몬즙 짜개라는 존재감 때문이었을까?  모두 아니다.  내가 이녀석한테 매력을 느낀 이유는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가는 페루사막의 광활한 그림 때문이었다.  그림이기는 하지만 여러 크기의 자갈을 이용해 정교하게 드로잉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듯 하다. 이 광활한 그림들은 비행기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원숭이, 강아지, 공룡을 닮은 새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나에게 가장 신비로웠던 그림은 아마존의 거미다.  나스카 사막에 정교하게 그려진 아마존의 거미는 그곳에서는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사막에서 그들은 왜 열대우림에서 사는 아마존의 거미를 그린것일까?  더욱이 이 거미그림에는 거의 생식기도 그려져 있는데, 이 거미의 생식기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볼 수 있는 것이란다.  오호!  놀랍다. 나스카의 인디언들이 아마존까지 수학여행을 갔다온 것인지, 그리스의 아틀란티스 문명처럼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을 가져 현미경을 벌써 가졌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왜 그린 것이냐에 대한 여러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가장 납득이 되었던 설은 이것이다.  나스카 사막은 너무 건조해서 물이 아주 부족한 지역이었다.  시체를 묻어도 썩지않고 미이라가 될 정도니까.  그런데 이 사막은 바닷가 근처라서 특정기간에는 바닷물이 신기루처럼 사막으로 넘쳐들어 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나스카의 사람들은 넘치는 물을 수로를 통해서 저장을 하고 싶었고 그런 까닭에 이 거대한 그림을 그려 가상의 수로처럼 사용했다는 것이다.  비록 사용할 수는 없는 물이라고 하더라도 머릿속에서는 홍수를 맛보고 싶었던것 같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오랑캐를 막는데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여도 국민들에게는 심리적 안정을 주는 상징물이었듯이 말이다.  이런면에서 보면 전국의 국경을 맨몸으로 보초를 서며 외세의 침략을 막아냈던 스파르타의 국민들은 진정 강심장인듯하다.  쥬시 살리프 이야기 하다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 사실 다음에 소개할 녀석을 꺼내기 전에 깃털처럼 살짝 이야기를 던지고 싶었던 것인데… 이게 다 나스카의 거미 네 놈 때문이다!

 

필립스탁 쥬시살리프
한때 CSI의 길반장처럼 거미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다. 가끔은 태생이 곤충이었는데 적자생존마냥 다리 두개를 떼어내 거미류로 진화한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했었다. 사진은 나스카 사막에서 그려진 아마존의 거미다. 보고있으면 주술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커피는 뭐든지 다 좋다.  카페인 함량 최고를 자랑하는 도서관의 자판기 커피부터 갓 로스팅해서 거품이 잔뜩 올라오는 드립커피까지 다 좋다.  내 인생에서 커피는 계속 같이 있었다.  너바나에 빠져 세상의 모든 음악은 얼터너티브 록이어야 한다고 착각하며 살았을 때에도, 마법같은 드가의 그림을 보고 그 감동을 어쩔 줄 몰라 서성일 때에도, 긴 터널 안으로 내가 빨려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을 때에도 그랬다.  오래된 만년필처럼 묵묵히 내 옆에 서 있는 커피가 참 고맙다.   한때는 물온도 맞춰가면서 까탈스럽게 커피를 내려마셨던 적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귀차니즘 때문에 요즘은 에스프레소 머신에 기대산다.  에스프레소 머신 덕분에 커피는 내 일상을 더욱 파고 들고 있다.  야외에서도 이 맛을 즐기고 싶으니 말이다.  야외에서 쓸만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찾아보니까 맘에들면 가격이 비싸고 저렴하면 하나같이 정수기 필터처럼 생긴것이 대체로 별로였다.   프레소라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프레소를 보면 눈을 떼기 어렵다.  너무 가지고 싶게 생겼기 때문이다.  덩치 큰 쥬시 살리프라고 할까?  프레소는 사용법도 매우 간단하다.  우선 커피추출 모든 과정이 수동이다.  물을 채우고 커피를 갈아서 양쪽 다리로 몇 번 펌핑만 하면된다.  추출과정이 수동이기 때문에 손으로 누르는 힘에 따라 커피의 맛도 달라진다고 한다.  기계 사용에 익숙해지면 미묘하게 다양한 커피맛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소에서 나온 에스프레소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괜찮다는 반응이다.  캡슐로 내리는 네스프레소보다는 프레소가 낫다는 사람도 있고, 맛에 대해 예민하게 굴지 않는다면 굳이 비싼 머신을 들여놓을 필요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불켜놓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타들어가는 커피맛을 자랑하는 일반 커피머신보다 위생적이라고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가격은 미화 $150불이다.  디자인, 맛, 가격에서 골고루 괜찮다면 이제는 카드 꺼낼일만 남았다.   “거미처럼 생겨서 우아한 디자인을 하고서 아침에 커피 내리는데 최적이다.” 어느 에디터가 프레소를 평한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프레소 에스프레소머신
강바람 맞으며 갖뽑은 에스프레소를 먹으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프레소를 개발한 영국 디자이너 패트릭 헌트의 아이디어가 빛난다. 영국 썬데이 타임즈에서 이번주의 가전제품에 소개되기도 했다.]

 

프레소 에스프레소 아이스크림
프레소를 손에 넣으면 가장 먼저 해볼 생각인 비엔나 커피.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갓 꺼낸 W콘,B콘을 달랑 컵에 떨어 뜨려서 해봐야지.

 

 

프레소 사용법.  유튜브는 보물섬같다.  찾으면 뭐든지 나온다.가끔 서양애들의 광고전략이 꽤 명석하다고 느낄때가 종종있는데,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티 안나고 브릴리언트하게 치고 빠진다. 바이럴마케팅 외치는 한국기업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홈쇼핑에서나 나올법한 어디로 숨고싶은 연기 좀 사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