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라고 규정하는 부분은 다분히 현대적이고, 당연히 현대라고 규정하는 부분은 여전히 근대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현대는 이렇게 현재와 과거가 혼재되어 있다. 이런 탓인지 현대미술을 어디에서부터 선을 그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술관련 서적들조차 근대미술과 현대 미술을 묶어서 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금보다 더 흐르고, 근대와 현대미술의 경계에 대한 의견이 모아지면 그때 명확하게 나누는 것이 가장 현명할 듯 싶다.

 

당연하지만 골치 아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1953년의 작품 한 장 때문이다. 미술사의 연대기로 보면 1950년대는 근대미술에 속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작품의 개념은 현대미술에 속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Erased de Kooning Drawing”이고 1953년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작품이다. 제목을 풀어보면 “ 쿠닝의 로잉을 지운”이다. 말 그대로 쿠닝의 로잉을 지운 작품이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다분히 도발적이다. 내용은 이렇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양대 산맥인 윌렘 쿠닝의 로잉을 로버트 라우셴버그가 사들인다. 그리고 라우셴버그는 쿠닝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당신의 작품을 좀 손봐도 될까요?” 그리고 쿠닝의 허락을 받고서 라우셴버그는 그의 로잉을 지우개로 지웠다.  로잉을 모두 지워낸 것이다.

 

드쿠닝을 지운 깊은 울림.
원래는 라우셴버그의 드 쿠닝의 드로잉을 지운 것을 올리고 싶었으나 저작권 때문에 그냥 말레비치 것으로 대신한다. 이럴때는 정말 저작권이 짜증날 때가 있다.  그래도 보호되어야 할 것이 저작권이다.

 

라우셴버그가 이렇게 도발적인 행위를 했던 것은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제부터 나는 추상표현주의와 다른 노선을 걷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그래서 제목도 “ 쿠닝의 로잉을 지운”이라고 했던 것이다. 자신도 추상표현주의를 철저하게 모방하고 연습했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이 시기의 라우셴버그를 보면 추상표현주의의 염증보다는 치열한 미술계에서 차별화하기 위한 의도가 더 컸다고 보인다.  그리고 그의 차별화 전략의 저변에는 다다이즘이 있었다.  기존체계와 관습적인 예술에 대해 반발하는 생각을 지닌 다다이즘은 라우셴버그에게 꼭 필요한 장치였을 것이다.  자신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 차별화를 하면서 동시에 탄탄한 정체성을 가지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단칼에 내려놓은 표현주의와 작별은 라우셴버그에게 선구자라는 타이틀을 주었다.  쿠닝을 지우고 나니 보이는 모든 것이 작품의 재료가 되었다.  이것저것 주워다가 칠하고 붙여서 2D와 3D를 혼합해 회화의 지평을 넓히고 (콤바인 페인팅), 신문과 잡지를 떼어내 콜라쥬를 하고 여기에 실크스크린을 적용해 복제의 미학을 선보였다(팝아트).  대부분은 팝아트앤디 워홀과 동일시 하고 미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조로 여긴다.  하지만 라우셴버그의 극적인 실험정신이 없었다면, 미국의 팝아트는 영국에서 수입된 하나의 유행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앤디 워홀도 팝아트 동네에서 굳건히 뿌리를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쿠닝의 로잉을 지운”이 주는 울림이 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명하고, 북적이고, 볼것많은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  작가들의 쟁쟁한 아우라에 다리가 부러질것같은 아픔을 참으면서도 최대한 오래 머물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반고호의 아를에 있는 반고호의 방, 드가의 발레수업 등 인상파의 매력적인 그림들이 숨가쁘게 자리하고 있다.  노골적인 종교적, 신화적 컨텐츠를 배제하고 현대인들에게 가장 가슴벅찬 감동을 주는 그림들 중에 하나가 인상파들의 그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마네는 인상파 화가들과 자주 어울려 지냈지만 단 한번도 인상파 화가들과 전시회를 같이 한적이 없는 비인상파 화가이고, 반고호는 인상파의 화풍과 개념에 반발해 순간적인 것보다 의미있는 것에 집중했던 후기 인상파의 화가지만 인상파에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은 그들을  따로 떼어서 분류하고 선을 긋는 유난을 떨필요가 없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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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기차역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탄생한 오르세 미술관의 외관.  런던의 테이트 모던도 오르세의 선례가 있어서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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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 지하철역. 오른쪽 옆으로는 세느강이 흐른다. 유럽의 지하철이 우리나라 지하철보다 좋은 것이 딱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땅속깊이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지하철을 탈 수 있다는 것과 주위 환경과 어울리는 소소한 지하철 역사 입구다.

인상파 집단이 생겨날 수 있는데는 나폴레옹 3세에 시작된 파리 재정비 프로젝트가 아주 큰 몫을 했다.  말이 재정비 프로젝트지 사실은 100년동안 끈질기게 이어론 프랑스 혁명의 가담자들을 쉽게 진압하기 위해 도로, 수도, 건물 시설 들을 뜯어 고친 것이다. 원래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파리는 대국민 감시 프로젝트로 인해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근대화된 도시가 되었다.
새롭고 화려한 도시를 보기위해 사람들을 몰려들었고,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가 이태리에서 프랑스로 넘어오는 패러다임의 대 변화를 겪게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왕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고, 작가들은 더이상 종교적이거나 신화적인 컨텐츠를 담아 자신의 의도를 보여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 사이에 인상파가 전쟁과도 같은 미술화단의 세계에 슬쩍 발을 들이댔다.  인상파들의 그림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와같은 말이다.  하지만, 인상파들의 그림을 잘 살펴보면 근대화에 발맞춰야 하는 사람들의 피곤함과 회한이 여실히 드러난다.  일하는 여성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 살기어려운 서민의 삶을 한껏 포장한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 육체적 댓가를 원하는 물질적 후원자를 등에 업어야 하는 물랑루즈의 댄서를 그린 드가의 수많은 그림들.

인상파의 그림을 보고는 루이 르루와가 “본질은 커녕 순간적인 인상밖에 없다.”고 독설을 품었지만, 오히려 인상파 화가들은 서민들의 삶에 누구보다 깊숙히 들어가 근대화에 폐단을 곳곳에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찰나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급변하는 사회를 예리하게 배치한 이들의 노력에 힘껏 소리내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내가 파리에서 제일 부러웠던 사람들은 인상파의 그림들을 옆에두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파리지엔 모두였다.  파리지엔들에게 꼭 부탁의 말을 건네자면, 앞으로도 부디 지금처럼만 이들을 아끼고 사랑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파리에 갈때면 언제든지 이들을 꺼내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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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생활의 여유가 있었던 마네는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맘껏 그릴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마네의 그림은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리는 그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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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그림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고 즐거운 무도회같이 보이지만, 서민들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모네는 열악한 서민들의 삶을 쾌활하고 낭만적으로 그려냈다.  물랭 드 라 갈레트를 통해 서민들도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고, 잘 살고 있다는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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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 여자 앞에 놓인 고급 술과 과일들은 그림의 떡이다.  그녀는 술집에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즐기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의 위트가 살아 있는데, 거울에 비친 남자의 여자의 모습은 심히 왜곡되어 있다. 여자가 서 있는 자세로는 여자와 남자의 모습이 중앙에 위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네는 그림의 답답함을 벗기기 위해 거울에 비친 뒷모습을 살짝 틀어서 오른쪽에 그렸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오르세가 아닌 런던의 코톨드 갤러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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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의 스타. 물랑루즈에서 춤을 추고 있는 발레리나.  그녀의 뒷쪽으로 커텐뒤에 남자가 서있다.  이 남자는 발레리나를 물질적으로 후원하는 사람이다.  바즈 루어만의 물랑루즈를 보면 이와 매우 흡사한 내용이 나오니 참조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