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역사를 떠받들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의 유전자에는 선조들의 것과 자신의 것을 잘 섞어 보여주어야 한다는 어느 정도의 강박에 시달린다.  재벌집 자재들이 부모의 존재를 절대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것처럼. 이탈리아의 패션브랜드들이 간지나고 웨어러블 한데는 조상들의 유물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이탈리아 브랜드라면 명품에도 척척 끼워주고 실제로 대를 물려서 넘겨주어도 전혀 촌스럽지가 않다.  그만큼 나의 디자인을 누가 어떻게 보느냐를 아주 신경쓰는 존재들이면서 또한 누구에게나 팔릴만한 아이템들을 귀신같이 잘도 내놓는다. 밀라노에서 선보이는 많은 아이템들이 꼭 가지고 싶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서 있다. 이런 이탈리아 분위기에서 프랑코 모스키노는 이탈리아 패션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프랑코 모스키노는 이탈리아의 장 폴 고티에라고 불리기도 했다.  장 폴 고티에는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누군지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시 한 줄 쓰겠다.  장 폴 고티에는 마돈나의 월드투어에서 뾰족 브라와 보디슈트를 디자인해 준 디자이너다.  프랑스의 오트 쿠튀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모스키노가 장 폴 코티에와 이름을 같이 올린건 이탈리아 패션계에서는 정말 튀는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린지 로한처럼 사건사고로 얼룩진 행사를 만들어 낸게 아니라 아주 파격적이고 과격한 패션디자인을 선보였다는 얘기다.   고티에와 모스키노가 패션계에서 앙팡 테리블이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패션에 대한 둘의 접근법은 많이 달랐다.  고티에가 패브릭과 형태를 가지고 그의 작품을 실험했다면, 모스키노는 기본적인 형식과 전통적인 방법들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모스키노의 저변에는 그가 대학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했다는 것이 주요했다.

 

그가 주목하고 연구했던 시대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였다.  패션을 바탕으로 파인아트를 차용했다면, 모스키노는 파인아트에 패션을 차용했다.  이 점이 그를 이탈리아의 앙팡 테리블로 만들었다.  그의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을 뒤샹과 마그리트를 상상하니 기분이 좀 오묘하다.  그는 패션을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삼아 파인아트 작가들이 늘 그렇듯 현실을 엣지있게 비판하곤 했다.  비싼 모피와 플라스틱을 섞는다더지, 캐시미어 재킷에 “비싼 재킷(Expensive Jacket)”이라고 수를 놓기도 했다.  그림이 팔리면 팔리수록 값이 치솟는 현실과 값이 얼만 안되는 재료로 수천만원의 값을 받는 현대 패션계를 동일선상에 본 것이다.

그의 통렬한 비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패션에 더 열광하는 팬층을 더 두텁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신선했고, 내 마음을 대변해주듯 시원했고, 어디에 입고 다녀도 독특했을 테니 당연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조상대대로 물려내려져 오는 유구한 역사를 통해 답습되는 입을만한 옷들이 아닌 자신의 비판적 생각을 옷에 담아낸다는 것은 이탈리아 패션계에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독보적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나이 지긋한 알마니, 베르사체, 프라다 등이 떡하니 버티고있는 현실에서  이탈리아 신진 디자이너들이 설 자리가 마땅치가 않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이탈리아를 떠나 패션 유목민으로 세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자신의 능력을 풀어놓는 중이다.  역사 깊어서 참조할 것이 많아 부럽기도 하지만 그 역사가 주는 깊이많큼 루키들이 설자리는 무겁기만 한 것이 이탈리아 패션계의 현실이다.  모스키노는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 그당시 사회적인 이슈들을 자신의 패션에 끌어들였다.  그는 에이즈 퇴치를 위한 옐로 스마일 심볼, 세계 평화를 위한 반전쟁 심볼, 사회적 차별에 반대하는 하트 심볼등을 사용했다.  내가 좋아하는 모스키노의 하트 심볼이 사회적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라니 새삼스럽다.

 

이런 모스키노의 지적인 패션활동이 오랜기간 계속되었다면 이탈리아에서도 파격적인 시도가 더 많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이렇게 침체된 이탈리아 패션계에 신선함과 통렬함을 계속 불어 넣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뒤샹처럼 톱숍에서 원피스를 하나사서 프랑코 모스키노라고 햄라인에 쓰거나 마그리트처럼 트롱프뢰유(trompe-l’oeil) 기법을 사용해 끊임없이 눈속임을 했을것이 틀림없다.  생각만해도 짜릿하고 멋지다.  그런데 재주가 많고 사랑을 많이 받으면 꼭 신이든 사람들의 시샘을 받기 마련인지라  모스키노도 4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에이즈와 배의 커다란 종양 때문이었다.  애통하고 또 애통한 일이다.  모스키노 사후에는 동업자였던 로셀라 자르디니가 모스키노를 이어가고 있다.  모스키노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마약이나 폭력, 동물학대 반대 캠페인도 벌이고, 에이즈 후원단체도 지속적으로 운영해가고있다.  모스키노 칩 앤 시크 부티크 호텔도 만들고. 그의 사후에도 모스키노는 파격적이고 심사뒤틀리지만 실험적이고 입기 좋은 옷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모스키노 칩 앤 시크는 미셸 오바마가 즐겨입는 브랜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