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모던, 앙리 마티스, 그리고 리차드 해밀턴.

항상 그렇지만 여행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별로없다. 아무리 길을 찾아보고 여행일정을 짜더라도 기어코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니까. 이번에도 그랬다. 숙소에서 테이트 모던까지 가는 버스노선을 프린트를 해놓고서 떡하니 튜브를 타고서 길을 헤맸다. 더욱이 쥬빌리 라인의 본드 스트리트역이 공사중이라서 제대로 튜브를 갈아타지도 못했다. 어쩐지 테이트 모던 이전까지 착착 계획대로 된다 싶었다.

테이트 모던의 전시는 크게 원래 가지고 있는 컬렉션과 앙리 마티스의 Cut-Out 전, 리차드 해밀턴 전 이렇게 세 가지였다. 내가 테이트 모던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박하다. 꼭대기 층의 레스토랑의 경치가 너무 좋다는 것과 그림을 보다가 지쳤을 때 널부러질 수 있는 소파가 아주 푹신하다는 것. 힘들면 가끔 잠도 잔다. 테이트 모던의 크기는 얼추 잡아 파리의 오르세와 비슷하다. 자체 컬렉션이 널널해 오르세보다는 전투적으로 보아도 된다는 부담감이 없다.  이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갈 때마다 다르지만 테이트 모던 자체의 컬렉션 중에 가장 오랫동안 벅찬마음으로 보았던 것이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작은 조각이었다. 브랑쿠시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테이트 모던에 있는 것은 정말 작고 그다지 알려진 것도 아닌데도 그 울림이 컸다. 피카소, 데키리코, 달리의 그림들보다 브랑쿠시가 더 기억에 남는걸 보면 브랑쿠시의 아우라가 정말 큰게 아닌가 생각된다.

리차드 해밀턴은 팝아트의 창시자로 일컫어진다. 하지만,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앤디 워홀에 비해 너무 일찍이 팝아트를 빠져나왔고, 오랜시간 작업을 하면서 그의 작품세계도 많이 변했다. 리차드 해밀턴을 팝아트로 국한 시키기에 어려운 부분이 여기에 있다. 그의 작품이라곤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팝아트의 시초 작품만 본 탓에 그에 대한 기대치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의 생애를 통틀어 여러작품을 둘러보니 테이트 모던이 왜 리차드 해밀턴을 불러들였는지를 알만한 대목들이 꽤 있었다. 뒤샹의 <Large Glass>에 대한 오마주, 믹 재거의 마약사건에 대한 실크 스크린, 마네의 올랭피아를 살짝 비튼 위트감. 기대치보다 흥미로웠고, 다시 보기 힘들 전시라는 생각에 테이트 모던이 고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4시간이나 기다려서 본 마티스의 Cut-Out 전시. 앙리 마티스의 컷아웃 전시는 마티스가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시절 종이오리기로 작업을 한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의 종이오리기 작업들을 보면 과연 이 양반이 관절염으로 고생한 것이 맞나? 할만큼 열정적이고 방대한 작업들에 입이 쩍 벌어진다. 엄청난 습작과 노트에 적어내려간 기록물들, 벽면을 모두 채우는 엄청난 크기의 종이 오리기 작업들, 스케치도 없이 쓱쓱 가위로 잘라내서 붙인 천재성과 열정. 마티스가 유명해서 작품이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작품이 매력적이어서 마티스가 유명해질 수 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전시회다. 마티스의 종이오리기를 보다가 갑자기 얼마전에 본 역린의 중용 23장이 생각나더라.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그 구절. 휠체어에 앉아 하루종일 종이오리기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그림의 세계를 이어가던 마티스는 사람들에게 종이오리기로도 얼마든지 감동과 경외심을 갖게 했다. 타이푸드와 화이트 와인에 빠져서 런던의 4일을 보내기에는 너무 긴시간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테이트 모던. 선택은 꽤나 탁월했다.

런던에 갈 계획이 있는 디자인유학플러스+ 피플들이 있다면 이번에는 꼭 테이트 모던을 가봤으면 좋겠다. 작품도 좋고, 경치도 좋고, 커피맛도 좋고, 살 기념품도 은근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