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튀르의 절정. 셀리브리티들과 왕비들의 웨딩드레스.

아무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포털에 접속하면 누군가 결혼한다는 기사가 검색어 사위를 차지하는 것이 요즘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유명인사들과 연예인들이 그 대상인데 이젠 좀 지루하다.  뭐 그렇게 남의 인생 대소사에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어 봐야하는지…  그래서인가?  뜬금없이 매체에서 열을 올리는 웨딩드레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다.  누가 누구와 결혼한다는 정보가 온갖 타블로이드를 장식하게 되면, 그 다음은 신부는 어느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었다라는 칼럼이 바톤을 이어받게 되고, 나는 지루한 것과 관계없이 너풀거리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쳐다보고 있으니 말이지.  웨딩드레스는 예쁘니까 그리고 멋지니까. ㅎㅎ   더욱이 웨딩드레스 때문에 패션유학을 생각하게 된 분들도 간혹있으시기도 하고.  어떤 셀리브리티의 웨딩드레스부터 이야기를 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내키는대로 늘어놓기로 했다.  헐리우드의 셀리브리티들 부터 왕실의 웨딩 드레스까지.  어떤 카테고리로 나눠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니까 습기찬 장마탓에 머리가 딱 정지해 버렸다.  나는 이렇게 또 더위를 먹어가나보다. ㅜ.ㅜ  Anyway!

내 머릿속에 처음 생각난 웨딩드레스는 사라 제시카 파커의 블랙 웨딩드레스다.  뉴욕 된장녀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섹스앤더시티의 그 캐리는 진짜 결혼식에서 블랙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매튜 브로데릭과 사라 제시카 파커는 그들의 결혼사진이 타블로이드에 도배되는걸 막으려고 블랙 웨딩드레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 당시는 파커보다 브로데릭이 더 유명하고 잘나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현재는 파커가 브로데릭보다 더 유명하고 돈도 잘버는것 같지만,  브로데릭네 집안이 워낙에 잘 살아서 파커가 아무리 수익을 내더라도 남편을 능가하기는 힘들단다.  파커가 유명해지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 제시카 파커는 후회를 했단다.  왜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에 블랙 웨딩드레스를 입었을까 하고.  아마 파커가 패셔니스타의 대열에 들어서면서 드레스코드를 제대로 읽은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섹스앤더시티 영화판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아방가르드한 웨딩드레스도 입었고,  입생로랑이 디자인해준 비앙카 재거(믹 재거 첫번째 부인)의 단아하고 섹시한 웨딩수트도 모사해 입었으니  블랙 웨딩드레스에 대한 후회를 조금은 거두지 않았을까.

두 번째 후보는 우리에게 상큼하고 유쾌한 결혼식을 선사한 케이트 모스다.  조니 뎁과 위노나 라이더가 헤어진 후 케이트 모스와 죽고 못살던 시절이 좀 거짓말 보태서 엊그게 같다.  조니 뎁과 헤어진 케이트 모스는 요양원도 다녀와야 할정도로 정말 힘들어했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고 조니 뎁 이후에도 케이트 모스의 남성편력은 대단했다.  조니 뎁 이후로 재퍼슨 핵과 사귀면서 딸 릴라를 낳았고, 그녀 인생 최악의 남자인 피트 도허티와도 사귀었다.  피트 도허티는 케이트 모스에게 코카인을 가르쳐 하마터면 코스가 모델계에서 축출당할뻔도 했다.  현재는 더 킬스의 기타 리스트 제이미 힌스와 결혼해 한 남자에 정착했다.  케이트 모스는 나쁜 남자를 좋아하기도로 유명한데 조니 뎁부터 제이미 힌스까지 사귄 남자를 죄다 평범한 착한가이는 없다.  이렇게 남성편력은 가득해도 결혼은 첫번째다.  케이트 모스는 패션디자이너들의 러브콜을 제치고 자신이 직접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했다.  패션감각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엣지를 같고 있으니 이런 자신감도 충만한거다.  패션분야의 여러 디자이너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웨딩드레스는 그녀의 콧대높은 자신만큼 상큼하고 유쾌해서 얄미울 정도였다.  케이트 모스는 자신의 슬림한 몸매를 돋보이도록 슬립형 엠파이어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남편 제이미 힌스는 블루그레이 투버튼 블레이저도 상큼하고, 딸 릴라의 화동 드레스도 이들과 너무 잘 어울린다.  누가 케이트 모스 당신 아니랄까봐 참 시크하고 러블리하게 결혼식을 성사시켰군요!  첨언 하자면 제이미 힌스와는 현재 이혼했다.  케이트 모스의 남성편력이 또 시작될 듯 하다.

세번째는 결혼도 진짜 많이했고, 남자도 정말 많았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다.  결혼은 8번, 전남편은 7명이다.   같은 남자와 두 번 결혼, 7번 이혼, 한 번의 사별.   그녀의 넘치는 열정과 전설적인 미모 때문이겠지만 결혼을 참 많이했다.  그 수많은 결혼중에 제일 뇌리에 남는 웨딩드레스는 첫번째 결혼이었던 콘래드 니키 힐튼과 했을 때였고, 리차드 버튼과 했던 두 번의 결혼 중에 첫번째 결혼식에서다.   참고로 리차드 버튼과 두 번을 결혼했고, 리즈 테일러에게는 5,6번째 결혼이었다.  첫번째 남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힐튼네 집안의 아들이다.  파리스 힐튼의 그 힐튼.  콘래드 힐튼은 부잣집 망나니 아들로 주체못하는 바람기와 알콜 중독으로 47세 젋은 나이에 사망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첫남편과 계속 결혼생활을 지속했다면,  파리스 힐튼은 그 요란법석을 안떨고도 헐리우드 동네에 발을 들였을지도 모르겠다.   5,6번째 남편이었던 리차드 버튼과는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만났다.  리즈 테일러가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리차드 버튼이다.  자기가 죽고난 뒤에는 버튼의 고향에 유해가 뿌려졌으면 한다고 말할정도로 사랑했다.  그러나 리즈 테일러의 인생을 따라가다보면 결혼과 이혼을 밥먹듯이 했구나하는 여자가 아니라  마이클 잭슨과 절친이었고 에이즈로 죽은 친구 록 허드슨을 위해 에이즈 퇴치 운동에 나섰던의리있는 멋진여자로 보인다.   콘래드 힐튼과 결혼할 때 입었던 웨딩 드레스의 가격이 1,500불이었다고 한다.  1950년에 일반인들의 1년 평균 연봉이 2,570불이었으니 드레스 값이 어마하다.  첫 결혼식의 웨딩드레스는 헐리우드의 코스튬 디자이너였던 헬렌 로즈가 맡았다.  리즈 테일러는 주얼리 수집으로도 유명하다.  언젠가 한 번 리즈 테일러의 주얼리 만으로 글을 쓸 예정이다.

네번째는 슬퍼서 아름다웠던 모나코 왕비 샤를린 위트스톡이다.  예쁜여자 좋아하는걸로는 모나코 왕가 남자들의 집안 내력인듯하다.  모나코 전 왕이었던 레니에 3세는 헐리우드 톱여배우였던 그레이스 캘리와 결혼했고, 아들 알베르 2세는 남아공출신의 아름다운 수영선수였던 샤를린 위트스톡과 결혼했다.   유럽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나라를 전세계에 알리게 된 계기는 알베르 2세의 아버지 레니에3세가 그레이스 캘리와 결혼하면서 부터다.  그레이스 캘리의 명성을 이용해 국가이미지 제고에 나섰던 레니에 3세는 전략적으로는 성공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는 못했다.  헐리우드에서도 유명했던 바람둥이 그레이스 캘리는 결혼후에도 여전히 바람을 피웠고, 레니에 3세는 마누라를 이용해 국가 홍보에만 열을 올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알베르 2세 여동생 스테파니 공주도 엄마를 닮아 남자문제로 끊임없이 사고를 치고 있고, 알베르 2세는 사생아까지 두고 있으니 말이 좋아 왕실이지 참 골아픈 집안이다.   남편이 될 사람이 사생아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모나코를 수차례 탈출하려던 샤를린 위트스톡은 결국 결혼식을 올렸다. 샤를린이 왕비가되던 날 결혼식에서 참 슬프게 울었다.  환하고 가장 빛나야 할 결혼식의 신부가 어떻게 사진 하나하나마다 구슬퍼 보이는지 가슴이 아리다.  샤를린 위트스톡의 웨딩드레스는 이탈리아 패션디자이너 조지오 아르마니가 디자인했다.   구슬펐던 왕세자비는 현재 쌍둥이들을 낳고 잘 사는 것 처럼 보인다.  알베르 2세가 딱히 사고만 안치면 좋겠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세기적이면서 비운했던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레이디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다.  미국에는 귀족가문이 없다보니 재클린은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이 귀족으로 여기는 사람중에 하나다.  재클린이 등장하기전까지는 사교계 여자들의 룩은 두꺼운 모피에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를 끼는 것이 정설이었다.  유럽 귀족가문에서 보기에는 미국 사교계의 마나님들은 참으로 졸부스러운 스타일을 구사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TV매체가 정치에서 중요하던 시절이 아니었을 때에는 미국의 퍼스트 레이들도 하나같이 검소하고 촌스러운 룩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재클린이 퍼스트 레이디로 등장하면서 그녀는 새로운 퍼스트 레이디 스타일을 제공한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  물론 그만큼 국민세금을 펑펑 쓰기는 했다.퍼스트 레이디의 스타일이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은 재클린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마치 오페라가수의 기준이 마리아 칼라스를 기준으로 나눠지는것처럼 말이다. (재미난건 재클린과 마리아 칼라스는 오나시스를 매개로 관련있는 인물이다.)  재클린은 아일랜드계인데 부비에라는 성도 그렇거니와 대학시절 프랑스에서 공부했던 경험이 있어서 미국인들이 가진 유럽귀족에 대한 환상이나 동경을 적절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스타일 좋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내조 잘하는 젊은 퍼스트 레이디를 미국은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사랑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냉전시대에 소련과의 냉냉한 관계도 재클린이 후르시초프를 만나면서 부드러워졌고, 세련된 매너와 스타일로 드골과 네루의 마음도 사로 잡았다.  멋지고 세련된 스타일과 매너를 가진 퍼스트 레이디의 위력이 정치외교에서도 활약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점을 존 에프 케네디는 적극 외교에 활용해 미국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힘을쓰기도 했다.  재클린 케네디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이야기를 써내도 모자랄만큼 무궁무진한 에피소드가 있다.   재클린의 라이프 스타일, 케네디의 암살, 오나시스와으 재혼, 아들의 죽음 등 삶 전체가 드라마다.  존 에프 케네디와의 결혼식에서 입은 웨딩드레스는 재클린을 지적이고 우아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유럽왕실의 결혼식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하나하나 시접과 주름을 넣어 쿠튀르라는 것을 강조했다.  재클린 첫 결혼식의 드레스는 앤 로에가 디자인했고, 앤 로에는 당시에 쿠티리에로 유명한 디자이너였다.

언젠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이들을 한 명씩 따로 이야기 할 기회가 올 것이다.  이들 모두 패션의 아이콘들이기 때문에 한 명씩 다루어도 충분한 이야깃 거리가 될 듯하다.  이들의 결혼 생활이 모두 행복하거나 행복했기를 바래본다.